평면성(Flatness)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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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 9. 22 (금) ~ 11. 19 (일)페이지 정보
Place. 021갤러리본문
021 갤러리에서는 ‘평면성(Flatness)으로부터...’라는 주제로 과거 모더니즘 회화에서 강조된 평면성(Flatness)을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 다양한 실험적 매체를 통하여 또 다른 평면성이 강조되는 권도연, 이해민선, 차승언 3명의 작가 작품을 소개한다.
모더니즘 회화는 재현적인 그림이 아닌 시각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써 오직 회화 본연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는 평면이어야 했다. 이는 회화의 매체를 구성하는 평평한 화면, 직사각형의 캔버스, 안료나 물감의 한계성으로 이차원적 평면의 리얼리티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환영의 이미지를 버리고 회화 고유의 성질인 평면성을 드러내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발전한 평면성 회화는 추상회화의 근원이 되었지만 미래지향적 의미는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에서 다양한 매체가 발전하면서 이차원적 입체와 삼차원적 평면이 시각화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 명의 작가들의 다른 매체를 통하여 회화만의 관점에서 벗어난 또 다른 평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도연 작가는 오랜 시간에 구겨지고 찢어져 더 이상의 기능을 상실한 것 같은 변형된 책의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표현한다. 책은 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내포하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진 속의 변형된 책은 그 본성이 상실되고 종이의 본질만이 일그러진 책의 형상만 남기고 있다. 물과 습기에 부풀어져 그 형태가 상실된 책의 겹 사이로 드러나는 텍스트는 그 책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종이의 본질만이 자연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이미지로써 존재하는 듯하다. 작가는 변형된 종이의 겹 사이로 드러나 있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사진의 제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렇게 설정된 제목은 사진에서 보이는 책이 정보와 관계가 있는 듯하면서도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책이 가지는 무거운 의무를 벗어버리고서야 종이라는 순수한 본성으로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듯하다. 펼쳐지지 않는 부풀어진 책의 겹 사이로 드러난 글씨나 이미지가 우리에게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전달하고 있다.
이해민선의 작업 ‘웅덩이’ 시리즈는 약품을 이용하여 사진 위의 이미지를 녹여내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녹아 사라진 이미지는 형상을 알아볼 수가 없이 잉크의 물질만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남겨진 잉크를 작가는 여러 차례 붓질로 붓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모아진 흔적은 평면적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고여 있는 잉크의 웅덩이 같기도 하다. 사진이 가지는 리얼리티 환영을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또 다른 평면성 회화의 실험이기도 하다. 이후 최근에 작업 ‘덩어리’ 시리즈는 사진의 잉크가 아닌 순수회화의 요소인 안료를 이용하여 제한된 사각 캔버스 위에 붓질을 반복하여 평평한 덩어리를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봉우리’ 연작에서는 제한된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에 봉우리가 잘려나간 산이 있고 그 앞에 봉우리가 없는 산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작가는 캔버스의 프레임에 의해서 잘려나간 불완전한 산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 그려진 온전한 산의 형태를 재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봉우리가 없이 재현된 산은 온전한 하나의 덩어리인 것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여 지는 환영의 3차원적 덩어리가 아닌 우리들의 내면에 깊이 존재하는 덩어리를 표현하고 있다.
차승언 작가는 섬유공예와 순수회화를 전공한 후 채색된 실로 직물을 짜는 태피스트리 방식으로 회화의 이미지를 만들고, 또는 그 위에 물감으로 추상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미색 실과 염색된 실을 베틀에 걸어 몇 가지 패턴으로 추상적 이미지를 직조해낸 천을 규격 캔버스 틀에 메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20세기 추상회화의 본질적 매체를 구성하는 것은 평평한 화면, 직사각형 캔버스, 그리고 이미지를 표현하는 안료나 물감이다. 직조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가의 작품은 과거 20세기 추상회화에서 강조된 오브제화 된 캔버스를 새로운 형식으로 더 철저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염색된 날실로 직조하여 패턴화시킨 기하학적 추상 이미지는 과거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평면성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순수미술에서 소외된 직조 공예를 이용하여 미래 지향성을 잃어버린 추상회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