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osity: 결, 바림, 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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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 09. 14. - 10. 27.페이지 정보
Place. 021gallery본문
021갤러리는 여전히 팬데믹 터널에 갇혀 상전이 과정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가 사유해야 할 물음으로 <porosity : 결, 바림, 켜>전을 개최한다.
다공성(porosity)은 물질의 내부와 표면에 작은 구멍이 많이 있는 성질을 말한다.
각각의 물질이 자립적이면서도 그 자신 속에 무수히 많은 아주 작고 비어있는 간격, 즉 구멍을
지니며 이 구멍을 출입함으로써 서로 순환, 융합하는 것이다. 다공성은
경계를 해체한다. 팬데믹으로 불안의 경계가 깊어 간다. 이번
전시에서는 경계를 해체하는 다공성으로 강수진작가의 결, 김민주작가의 바림, 정소영작가의 켜를 선보인다. <porosity : 결, 바림, 켜>전은
불안의 경계를 넘어가는 각자의 다공성을 사유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강수진 Kang, Soojin
결(結) - 맺다, 모으다, 묶다, 매다
강수진작가의 작업은 디자인과 공예 그리고 조형의 경계에 놓여있다. 비어 있음과 가득 차 있음이 하나의 형태로 공존한다. 멕시코와 인도, 아이슬란드 외에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직접 배워 온 전통 직조방식을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표현해 내는 작업을 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직물이 더 이상 자신의 기능에 얽매이지 않듯이 사용되는 재료 또한 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래 직물이 사용되기 위한 어떤 ‘유용성’에 기반하여 만들어진다면 작가의 작업 속 직물은 추상적인 형태이다. 실이라는 얇은 선으로 구성되는 조형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표면으로 드러나는 매듭 하나 하나가 묵직하다. 맨손으로 생사와 리넨, 삼베를 엮는 힘들고 고된 작업들은 시간을 이어주는 하나의 매듭이면서 동시에 사라져가는 시간을 붙잡아 놓은 흔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직조작품과 작가의 작업과정을 영상으로 선보인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시간을 직물로 시각화하는 작가의 결(結)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경계를 해체하고 흐르는 시간의 다공성이다.
김민주 Kim, Minjoo
바림 - 한 면 안에서 서로 다른 두 색이 제 빛깔을 간직한 채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
김민주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 재료인 장지에 수묵 베이스로 채색을 하고 다양한 색채를 풍성하게 낼 수 없는 분채의 한계를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을 한다.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공간이 접목된 이상적 자연을 표현하거나 서로 다른 시공간과 그 역할들이 경계를 허물고 모호해지는 장면으로 관람객을 ‘사유하기’ 숲으로 인도한다.
“나의 작업은 현실에서 경계가 지어지며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홀로 묻고 답하는 ‘문답’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시각 형상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혼합하여 현실 공간 속으로 이상적 자연을 가져와 보기도 하고, 까마득한 연못이나 산골짜기, 숲, 섬의 공간들을 통해 사유와 성찰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역할들이 각각의 경계를 허물고 뒤섞이며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며 일상의 일탈과 상상의 유희를 찾아보는 것이다.
그림을 통한 일탈은 현실로부터의 거리두기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일탈을 통해 다시 일상성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긴장된 현실을 벗어나야 사색의 여유가 생기며 그 공간을 통해서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의 문답공간의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작가의 작품설명 중에서
언어의 다의성을 시각화하는 작가의 바림은 전통과 현대, 고통과 유희, 환상과 실재, 나와 타자 등 경계에서 발생하는 이질적 긴장감을 최소화하며 공존의 타협 방식을 제시하는 여백의 다공성이다.
정소영 Chung, Soyoung
켜(layer) - 하나의 표면이나 여려 표면 사이를 덮고 있는 막
정소영작가는 지층과 국경, 바다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며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고정되지 않은 현실의 실체를 탐구한다.
"나는 내가 인지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거쳐 온 물질로 둘러싸여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도시와 역사를 품은 지층, 땅을 가로지르는 국경, 끊임없이 유동하는 바다, 모든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 이 공간들을 이루는 물질들은 어떤 시간을 지나왔으며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 조각과 설치 작업처럼 물질을 조합하는 행위는 시간 역시 변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결국 유한한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살 수 있음을 모색하고 있다. 시간의 경계가 무너지면 자유로워진다.“ - 작가 노트 중에서
<이미륵의 거울(2021)>은 물의 다공성이다. 작가는 2019년 북한과 중국의 국경인 압록강을 바라보며 『압록강은 흐른다』(1946)의 저자를 떠올렸다. 작가는 경계를 지우는 강물에 고향을 떠난 불안을 흘려보내고 그리운 기억을 기록한 이미륵의 시간을 물질로 구현한다. 질산은과 암모니아수, 수산화칼륨과 같은 화학약품을 물에 섞어 투명한 유리 표면에 뿌리면 유리는 물질과 반응하여 표면을 빛으로 환원한다. 표면과 표면 사이에는 이미륵의 풍경과 작가의 풍경이 채워지고, 거울은 전시장의 풍경을 담아내고 그 위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29.5일(2021)>은 작가가 달의 주기 동안 사라진 간조의 기억을 좌표 위로 불러오면서 갯벌에 남은 만조의 시간 흔적을 기록한 작업이다.
지질학적 다공성을 물성의 흔적으로 구현하는 작가의 켜(layer)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간의 사유이다.